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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음악 미학 (커버이미지)
헤겔의 음악 미학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 출판사느낌이있는책 
  • 출판일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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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독일 관념론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변증법을 체계화해 일세를 풍미한 사상의 거장이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 1770년에 뷔르템 공국 행정 관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김나지움(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종교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가 튀빙겐신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운 좋게 시인 횔덜린과 번득이는 조숙한 천재 셸링을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횔덜린과 셸링에게 영향을 주기보다는 주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의 사상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의 사상 여정은 그가 살았던 곳을 기준으로 해서 튀빙겐 시대 → 베른 시대 → 프랑크푸르트 시대 → 예나 시대 → 뉘른베르크 시대 → 하이델베르크 시대 → 베를린 시대로 이어진다.
튀빙겐신학교에서 그는 철학을 2년, 신학을 3년 동안 수강하면서 동시에 정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프랑스혁명(1789년)에 환호했고 철학이나 신학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지어 공부했다. 이 시기에 집필한 <민족종교와 기독교>도 순수한 신학 논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관심이 깔려 있다.
튀빙겐신학교를 졸업한 헤겔은 목사가 되지 않고 당시 관행처럼 가정교사가 되어 베른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칸트의 윤리학과 종교 이론을 공부해 <예수의 삶>과 <기독교의 실증성>을 집필했다. 베른에서 3년을 보낸 뒤 횔덜린의 호의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횔덜린의 영향 아래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을 집필했고 <독일 헌법론> 같은 정치적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셸링, 횔덜린과 함께 짧은 선언문 같은 <독일 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베른, 프랑크푸르트 시대는 헤겔이 사상적으로 암중모색하던 시기였고 청년 헤겔의 이상이 꿈틀거렸던 시기였다. 그러나 셸링의 초청으로 예나대학교에서 강의함으로써 신학적 이상으로부터 학문적 반성 체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셸링의 영향 아래 <피히테 철학 체계와 셸링 철학 체계의 차이>, <신앙과 지식> 등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정신현상학≫(1807년)을 출간함으로써 셸링과는 학문적으로 완전히 작별했다. 그는 진리란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개념의 운동을 통해서 체계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뉘른베르크 시대에 ≪논리학≫(1812∼1816)을 출간함으로써 형이상학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정교수가 된 뒤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으로 이어지는 학문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철학 강요≫(1817년)를 출간했고, 베를린대학교로 옮기고 나서는 정치적 저작인 ≪법철학 강요≫(1821년)를 출판했다.
말년에는 형이상학인 ≪논리학≫을 개정하려고 했으나 ≪논리학≫ 제1권인 <유론>만을 개정할 수 있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전염병 콜레라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1831년). 그러나 죽은 후에 그의 사상적 영향력은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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